기후변화 대응은 전 세계 정부에게 공통의 과제이며,
그 해결을 위한 경제적 접근 방식 중 하나가 탄소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정책이다.
그중에서도 **탄소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 Scheme, ETS)**는
정부가 배출 허용량을 설정하고, 기업 간 배출권을 사고팔도록 해
시장 메커니즘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제도다.
뉴질랜드는 이러한 탄소배출권 제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전 부문에 확대 적용한 국가 중 하나로,
배출권에 세금적 성격을 부여하고, 실질적 배출 감축을 유도하는 정책을 운영 중이다.
이 글에서는 뉴질랜드 ETS의 구조, 세금화 방식, 정책 효과, 그리고 국제적 함의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1. 제도 도입 배경: 기후 중립국으로의 전환 선언
뉴질랜드는 일찍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 비전의 중심에 두고 있었다.
2008년, 세계 최초로 농업·임업·에너지·폐기물 등 거의 모든 산업을 포괄하는 ETS를 시행하면서,
탄소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접근을 본격화했다.
이는 단순한 규제나 배출 상한 설정이 아닌,
시장 참여자 간 자율적인 거래를 통해 가장 비용 효율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제도 시행 이후 뉴질랜드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법적 목표를 수립하였고,
ETS는 이를 위한 핵심 조세·시장 정책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 과세 구조: 탄소세와 거래세의 결합 형태
뉴질랜드의 ETS는 형식적으로는 거래제지만,
실질적으로는 탄소배출권을 통해 조세를 징수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이 구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정부가 연간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을 설정하고,
기업에 일정량의 배출권(뉴질랜드 단위, NZU)을 할당 - 초과 배출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며, 거래 시 비용 발생
- 정부는 배출권의 경매를 통해 수익 확보 → 기후 정책 재원으로 활용
- 배출권 단가는 시장 수요에 따라 변동되며, 일정 가격 하한선과 상한선 존재
즉,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1톤을 초과 배출할 때마다 실질적인 비용을 납부하는 구조이며,
이는 탄소세와 동일한 부담 효과를 유도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시장 기반의 세금 징수 모델을 운영하면서,
에너지 전환·탄소 흡수 사업 등 재투자 메커니즘까지 마련했다.
3. 정책 효과와 기후 재정의 연결
ETS가 시행된 이후 뉴질랜드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안정화,
산림 탄소 흡수 사업의 급속한 확대,
탄소배출 감축 프로젝트에 대한 민간 투자 활성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특히 정부가 경매 수익을 활용해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급, 농업 메탄 감축 R&D,
탄소저장 프로젝트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22년 기준, 배출권 경매를 통해 조성된 수익은 연간 약 10억 뉴질랜드 달러에 달하며,
이는 사실상 **‘기후 전용 재정’**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뉴질랜드의 ETS는 단순히 시장 기능이 아니라,
정부가 세금처럼 운용할 수 있는 구조적 기후 재원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4. 농업과 탄소세의 예외, 사회적 합의의 실험
뉴질랜드 ETS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농업 부문이 주요 배출원이면서도 장기간 과세에서 제외되어 왔다는 점이다.
뉴질랜드는 소·양을 중심으로 한 축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 산업이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약 48%가 농업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정치적 민감성과 식량 안보 논의로 인해 농업 부문은 초기 ETS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그 이후로도 농업계와 정부 간의 타협 구조 속에서 실질적 과세는 유예되어 왔다.
2025년부터는 농업 배출도 단계적으로 ETS에 포함될 예정이지만,
이를 둘러싸고는 농민 단체, 환경 NGO, 산업계 간의 첨예한 갈등이 존재한다.
이 사례는 기후세 설계에서 산업별 이해 충돌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대표적 고민을 보여준다.
5. 제도의 한계: 가격 변동성과 감축 목표의 불확실성
ETS는 시장 기반 제도이기 때문에, 배출권 가격이 수요·공급에 따라 급변하는 구조를 지닌다.
이는 유연성과 효율성을 주지만, 동시에 탄소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기업의 감축 유인이 약화되는 구조적 취약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뉴질랜드에서는 배출권 가격이 한때 폭등했다가
정부의 경매 물량 확대와 국제 경제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급락한 사례가 반복되었다.
또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면,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친환경 투자를 망설이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ETS만으로는 감축 목표 달성이 어렵다며,
보조금·직접 규제·기술 투자 등과의 병행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6. 조세 철학적 함의: 시장과 세금의 경계를 넘는 구조
뉴질랜드 ETS는 ‘세금’이라는 이름은 붙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세처럼 기능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법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배출권 가격을 간접 조정하며,
그 수익을 공공재 투자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세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는 향후 디지털 거래세, 자동화세, 데이터세와 같이
형식은 세금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조세 효과를 내는 새로운 제도 설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뉴질랜드 ETS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미래 지향적 해석을 시도한 사례로 남게 된다.
결론
뉴질랜드의 탄소배출권 과세 모델은 탄소 감축, 조세 수입, 시장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혁신적 접근이다.
ETS는 형식적으로는 세금이 아니지만,
**배출권 구매를 의무화하고 시장 가격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담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시장 기반의 탄소세’**로 작동한다.
이 모델은 기후 위기 시대에 세금의 정의를 다시 쓰는 실험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세금을 걷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방향을 조정하고 사회적 전환을 촉진하는 신호로서의 조세를 구현한 것이다.
탄소가치에 경제적 값을 부여하고, 그 수익을 다시 녹색 경제로 환류시키는 이 구조는
기후 대응에 있어 가장 지속 가능한 조세 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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